지난 주말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일대의 군부대와 역사 안보 유적지를 돌아보는 평화누리 투어가 있어 참여하게되었습니다.
승전 OP 전망대 - 남방한계선 철책길 걷기 - 1.21 북한 간첨침투로 - 경순왕릉 - 호로고루로 이어지는 일정입니다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연천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로부터 영토의 경계선이 되고있었으니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와 고구려가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었습니다. 승전OP 가 현재의 군사적 요지라면 경순왕릉과 호로고루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간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고 있었습니다.
민통선 입구 초소에서 신분 확인을 한 후 차량이 도착한곳은 승전 OP전망대 !
낯선이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지역인만큼 바짝 긴장한 마음으로 도착하였건만 파아란 가을 하늘아래 우뚝 솟은 아름다운 솟대가 그 마음에 여유를 찾아줍니다.
번거로운 절차가 요할뿐 그곳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던 우리의 땅 이었습니다.
25사단 72연대 GOP대대가 지키고 있던 승전 전망대는 북녘의 활동을 관측할 수 있는 최전방관측소로 우리 아군의 GP와 북한의 GP가 불과 750M 지척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최대 물류 집산지로 상업활동이 번성했던 고랑포가 내려다보이는 임진강과, 군자산 아래 연천평야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그러한 남쪽의 맞은편으로 비숫한 풍경이 펼쳐지는 북쪽도 역시나 평화롭기는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전 OP가 있던 민통선 주변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연천에서 개성까지 차로 달리면 30분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국토는 분단 70년이 지나며 목책으로 표시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 4KM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DMZ가 형성되었습니다.
승전 op전만대에서 맑은 날씨 덕에 개성 송악산의 가까운 위치까지 확인한 뒤 남방한계선 1차 순찰로 방벽을 따라 걸으면서는 하루 빨리 이 철책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커져 갑니다.
그러한 통일을 갈구하게 만드는 것은 또 있었으니 바로 지뢰였답니다.
얼마전 파주 dmz 지역에서의 목함지뢰 폭발로 우리 군인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었는데. 현실은 더욱 안타까웠으니 남과북의 평화가 흔들리던 68년부터 불안감으로 매설되기 시작한 지뢰가 현재 민통선 주변으로 약 30만발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지뢰의 위험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답니다.
승전 op에서 얼마 가지 않아 역사속 안보의식을 되새겨보게되는 장소가 있었으니 1.21 무장공비 침투로입니다.
1968년 1월 17일 북한군 정예요원 31명이 군사정보 수집과 대통령 암살 의무를 띄고는 연천 바로 이곳으로 침투하여 서울까지 단 3일만에 이동 결국엔 세검정에서 발각 29명이 사살되고 1명 생포 1명은 살아서 돌아갔던 간첩단 사건으로 생포된 1명은 모든 사람들이 이름만은 익히알고 있던 바로 그 사람, 현재는 목사이면서 안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김신조였습니다
실제 침투로는 철책너무 접근이 불가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바로 인접된 곳에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었답니다.
승전op에서 1.21간첩침투로까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이야기라면 연천의 또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이곳은 바로 호로고로, 북에서 남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임진강변에 위치한 요새는 초기에는 고구려가 한강 이남으로 남하하기 위한 전초지로 후반에는 신라가 차지한 후 고구려와 경계를 형성했단것으로 추정하게됩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곳은 신라의 56대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릉입니다.
귀족들의 권력다툼과 후백제 견훤의 계속된 침략으로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고려에 항복하면서 신라는 고려에 복속되고 경순왕은 왕건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978년 개성에서 생을 마감한 후 고향인 신라로 장례행렬이 향하는데 구름같이 밀려든 장례인파에 위기감을 느낀 고려조정에 위해 이곳 연천 장남면 고랑포리에 묻히여 신라왕조 유일의 경주 밖 능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