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지난 2년간 조사한 ‘세계의 소금’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염전에 가다』 사진집이 지난 연말 발간되었다.
이번에 발간된 사진집은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에서 지난 2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발간된 소금 연구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14~2015년까지 해외 12개 나라 15개 지역과 국내 경기도에서부터 전라도까지 천일염 지역 및 제주도, 기타 지역을 현지 조사하였다.
현지조사는 소금의 생산방식과 생산에 사용되는 도구 그리고 소금의 용도를 비롯하여 문화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소금의 상징과 소금민속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조사하였다.
소금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귀하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좋은 소금을 얻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 구석구석 인간이 살고 있는 어떤 땅에서도 소금은 만들어진다.
다만 바닷물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하고, 땅 속의 광물 덩어리인 소금을 채취하기도 하고, 오랜 옛날 바다였던 곳이 지형과 지질의 변화로 융기하거나 침하하면서 생긴 짠물을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연환경적 여건에 따라 생산방식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소금은 귀하디 귀한 것으로 늘 취급받았다. 소금 자체가 귀한 만큼 그 소금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또한 귀하신 몸일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 음식의 하나인 살라미(쇠고기나 돼지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많이 넣어 간을 세게 맞추어 건조시킨 이탈리아식 드라이 소시지)는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귀족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바로 소금과 향신료 때문이다. 후추가 많이 뿌려져 있을수록, 짠맛이 많이 날수록 그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금과 향신료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오히려 살라미가 하층민의 음식으로 전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1800년대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왕과 귀족의 식탁에만 소금통을 놓을 수 있었고, 소금통의 크기도 부와 권력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래서 유럽에는 소금통이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많이 남아있다.
그러다가 일반인들의 식탁에 소금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소금 생산이 대량화되어 대중화된 1800년대 이후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필수품에 징세하여 국가 세금에 활용했던 대표적인 것이 소금이다 보니 소금 가격이 설탕에 비해 훨씬 비쌌다.
이 외에도 소금은 계약의 보장을 상징하기 때문에 연회 식탁에 소금통이 빠지지 않고, 우호의 상징으로 빵과 함께 소금을 대접하였다.
광산에서 소금을 얻었던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 만이 양적으로 많은 소금을 얻을 수 있었고, 양질의 소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권력이 셀수록 희고 깨끗한(투명한) 소금을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독수리소금’(폴란드에서는 독수리가 왕족의 상징이다)으로 불리는 투명하고 맑은 소금은 왕족만이 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소금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사이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소금 자체가 화폐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파푸아뉴기니 바루야족과 마찬가지로 서부고원지대에 사는 엥가부족의 재소금은 교환의례의 중요한 상품이었다.
소금을 주고 돌도끼나 키나 조개 목걸이, 나무기름 또는 돼지와 교환하는 것이다. 다만, 파푸아뉴기니에서 소금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화페와는 구별되고, ‘티(Tee)'라는 재산교환의례를 통해 부족들간을 옮겨다니는 신성품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조사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소금이다. 그러나 모든 소금은 다르다’라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하였다.
특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금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인류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 과연 인류에게 전해지는 공통적인 문화적 유전자가 무엇이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를 소금을 통해 살펴보고자했다. 향후 종합보고서와 특별전도 연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